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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26.1 순천

[순천 여행] 철길에 잘린 도시 위, 순천의 철학을 묻다

by ㅇㅇ(39.7) 2026. 2. 17.

⚠️ 제가 직접 경험한 내용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순천 여행 5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 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태그를 참고해주세요.


1. 순천을 걸으며 느꼈던 것들

순천(順天)은 도시 이름 자체가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이름 그대로 뛰어난 자연이 보존되어 있어 이를 바탕으로 한 관광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동시에 몇 가지 부분에서 우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오늘은 관광객 입장에서 바라본 순천의 불편함을 적어보려고 한다.


2. PI/PX

저게 뭔 단어냐고? 당연하다. 내가 순천 여행 하면서 만든 단어거든. 모티브는 UI/UX (User Interface / User eXperience)이다. 그럼 내가 만든 PI/PX는? Pedestrian Interface / Pedestrian eXperience, 즉 도보자 보행 경험을 의미한다.

 

블로그를 쓰기 전부터 정말 많은 도보여행을 다녀봤는데, 순천은 내가 느끼기에 도보자 보행 경험(PX)이 차량 중심 설계에 밀려 안 좋은 도시였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관광객의 불쾌감에서 끝나면 당연히 별 문제가 없는데, 도보자 보행 경험은 그 도시의 교통사고율부터 크게는 주민들의 라이프스타일까지 영향을 미치곤 한다. 심지어 고령화율이 높은 지방 소도시라면 더더욱.


3. 순천의 교차로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순천의 도보자 보행 경험이 안좋은 이유가 순천시의 자연 보호 정책이나 관광 정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 비롯한다는 점이다. 가장 크게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이 바로 순천의 횡단보도이다.

 

순천의 횡단보도는 너무 교차로에 가깝게 위치해있다. 그럼 뭐가 문제냐? 대부분의 도로는 우회전 차량을 고려해서, 교차로에 가까운 인도 쪽은 둥굴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횡단보도를 교차로에 가깝게 위치하면? 인도가 둥굴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보행자는 더 많이 걸어야 한다. 심지어 순천은 횡단보도 초록불 시간이 상당히 짧은 편인거 같은데, 노인 분들은 건너기 상당히 힘드실 것 같다.

순천 교차로

 

다른 도시의 도로들은 보통 교차로에서 상대적으로 먼 곳에 만들어서 보행 거리를 단축시키거나, 시간을 많이 주는 편인데 순천은 청년인 내가 걸으면 시간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4. 철도도시의 명암

철도역을 놓게 되면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장점이 크다. 하지만 이동권의 축소라는 부작용은 철도를 깔고 난 이후에서야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철도의 건설은 노선을 지하화하거나 아예 다리 위로 올리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도시를 단절시킨다. 도시가 철로를 기준으로 반으로 갈라져, 반대편으로 넘어가려면 육교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육교가 충분하지 않으면 예전에는 짧게 갈 수 있던 거리들을 멀리 돌아서 가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걷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노인분들이다. 

철도 도시의 명암

 

약 3.6km의 철로로 단절된 순천이지만, 노약자가 실질적으로 이용 가능한 육교나 다리는 순천역 북쪽에 2개, 남쪽에 4개로 총 6개다. 평균으로 계산해봐도 간격은 약 500m이고, 순천역 주변 같이 육교가 거의 없는 곳에서는 운이 안좋으면 약 1km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한다. 이는 체력적 소모뿐만 아니라, 도시의 특정 구역을 가기 싫은 곳으로 만들고 상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순천은 이에 더해 큰 강이 도시를 가로지른다. 애초에도 우회계수가 높은 도시였다. 다행이도 강에는 다리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 같다만... 육교도 추가 설치가 필요할 것 같다.


5. 자연을 보존한다는 것

순천이 생태 도시를 표방하며 거시적인 자연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도시 내부의 미시적인 보행 생태계(PX)를 돌보는 데는 소홀했다고 생각한다. 순천이 자연을 보존하고 생명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선택한 이유가 동물을 지키고자 하는 생명중심적 원리에 입각할텐데, 오히려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인간의 보행권에는 소홀했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순천은 분명 자연을 지키며 매력적인 관광지로 부상했지만, 그 지역을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포커스가 밀려 자연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일상의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생태를 지키기 위해 도심의 화려한 개발을 막는 것은 찬성하지만, 그것이 '횡단보도 신호 체계 개선'이나 '보행자 중심의 도로 재설계'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PX 개선까지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6. 여행을 마치며

순천은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불편함이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던준 도시다. 이곳에는 그 흔한 케이블카 하나 없다. 케이블카가 없기에 땀을 흘리며 걸어야 했지만, 덕분에 흑두루미는 가로막는 줄 하나 없는 온전한 하늘을 얻었다. 순천의 불편함은 결국 누군가의 평화를 위한 대가였던 것이다.

 

편리함이 미덕인 시대에 순천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어디까지 인내할 것인가? 한낱 여행자는 사람이기에 답한다. '하늘의 순리를 따른다'는 순천(順天)의 이름은 산과 강을 그대로 두는 것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진정한 순천의 정신은 그 하늘 아래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생명의 리듬을 존중하는 데서 완성된다. 하늘을 나는 흑두루미의 비행로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불을 기다리는 노인의 보폭을 배려하는 '소프트웨어적 최적화'가 필요하다. 자연과 인간, 보존과 이동권 사이의 정교한 보행 경험 설계가 이루어질 때, 순천은 비로소 이름에 걸맞은 가장 완벽한 생태 도시가 될 것이다.

순천 습지


⚠️ 제가 직접 경험한 내용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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